2013년 9월 29일 일요일

책을 쓰기까지 - 교정

4월 10일경부터 교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출판사로부터 1차 교정본을 받아본 순간 분노가 온몸을 감싸더군요.

일단 '~것이다'란 표현이 모조리 '~이다'로 바뀌었습니다. 출판계가 '~것이다'란 표현을 싫어하는 건지, 확신없어 보이는 문체가 싫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죄다 고쳐놨더군요.

문제는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바꿨다는 겁니다. 마치 '한꺼번에 바꾸기' 기능을 이용해서 바꾼 것처럼.. 결과적으로 많은 부분의 문맥 흐름을 어색하게 만들어 놨더군요.

예를 들면,
  • '정확하게 탐지 또는 차단한 정보들이 모여야 한다. Positive 또는 Negative를 막론하고 정확한 룰 운영이 먼저인 것이다.
  • -> '정확하게 탐지 또는 차단한 정보들이 모여야 한다. Positive 또는 Negative를 막론하고 정확한 룰 운영이 먼저이다.'

이런 식으로 이전 문장을 보조하는 문장을 개별 문장처럼 딱딱하게 바꿔놨더군요. 확신없어 보이는 표현이 마음에 안 들었나?

그 외에도 부록의 PHP 코드에 포함된, 후배가 사투리로 장난스럽게 표현한 '업로드가 안뒤어'란 에러 메시지는 '업로드가 안되'로 바뀌고. (오타로 생각한 듯)
  • abc숫자’ 형태의 공격 패턴이 존재할 경우, content 옵션만을 이용하면 ‘abc0’부터 ‘abc9’까지 10개의 룰을 만들어야 하지만 
  • -> abc 숫자’ 형태의 공격 패턴이 존재할 경우, content 옵션만을 이용하면 ‘abc 0’부터 ‘abc 9’까지 10개의 룰을 만들어야 하지만 (일종의 코드인 문장까지 띄어쓰기 적용)

교정 내내 정말 답답했습니다. 대략 추려보면,
  • 경우 -> 때, 한자 표현을 한글 표현으로
  • 메시지 바디 -> 메시지 보디, 외래어 표기법에 어긋난답니다. 맘에 안들어서 '본문'으로 수정
  • 대부분의 -> 대부분..'~의' 표현이 많은 것도 안 좋아 하더군요. 그러면서 책 표지 뒷장의 'IDS, IPS, 웹방화벽 등 룰 기반 보안솔루션 정보보안 감시체계 완성' 문구는 고쳐달랬는데 안 고치고(..)
  • ~적 -> 일본식 표현이라며 출판계에서 싫어하는 듯

더 많은데 생각이 잘 안나네요. 그림도 박스 표시 등으로 강조한 부분들이 빠지거나 엉뚱하게 표시되고, 교정할 때 조금이라도 고생을 덜 하려면 그림을 만들 때 원본과 별도로 강조 표현이 포함된 이미지를 만드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정하는 분과 함께 작업을 하면 하루면 끝날 듯해서 만나게 해달라고 했는데 안된다는 말만 하고, 출판사 2차 교정본을 수정해서 보내면 2차는 수정이 됐는데, 1차가 다시 원복이 된 3차 교정본이 오질 않나. -_-

가능한 출판사 교정을 수용하면서 자연스런 문장 흐름을 유지하는 작업이 계속 됐습니다. 이런 작업을 5월초까지 거의 한달을 하고 나니 정말 진이 빠지더군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책을 쓰다보면 표지 이미지도 자연스럽게 준비하게 됩니다. 저는 '구멍 난 철조망으로 내부를 주시하는 외부인'을 묘사한 이미지를 준비했는데, 눈빛이 섬뜩하다며 다른 이미지를 보내주더군요. USB가 달린 자물쇠?

무슨 초딩 교양 서적도 아니고, 이건 아니다 싶어서 인터넷 뒤져서 지금의 이미지를 만들게 됐죠. 이미지 저작권때문에 출판사에서 일정 비용을 지불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목, '해킹', '포렌식' 등 대중적(?)인 키워드가 없는, 'IDS와 보안관제의 완성'이란 제목으로는 흥행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키워드를 사용해서 어린 학생들을 유혹하고 싶지도 않았구요. 결국 많은 보안 현장이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빅데이터를 갖다 붙였습니다. 출판사도 좋아하더군요.

하둡같은 빅데이터 기술 분야를 예상하고 제 책을 구매하신 분들에게는 좀 미안하기도 합니다만, 네트워크 보안 분야에서 정확한 데이터 수집이 보장되지 않는 한 빅데이터는 빅쓰레기일 뿐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5월 15일 책을 출간하게 됩니다. 몇 달 안됐는데 벌써 옛날 얘기처럼 느껴지네요. 다시 책을 쓰게 된다면 그 때는 이런 시행착오가 좀 줄겠죠? 똑같은 과정을 다시 겪어야한다면 책 쓰기 정말 싫을 듯. 

하지만 혹시 집필을 생각하신다면 이 글을 읽고 쫄지 마세요. 끝까지 완성했다는 성취감이 저 모든 고통들을 상쇄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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