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9일 일요일

책을 쓰기까지 - 리뷰

지난 글에 썼듯이 6월말에 초고를 완성했습니다. 출판사로 보냈더니 '지금은 바쁘니 기다려달라'고 하더군요. 9월에나 출간 작업이 가능하다고. 리뷰할 계획은 없냐고 물어봤더니 없다고 하더군요.

9월까지 신나게 놀았습니다. 평일에 놀러다니니 정말 재밌더군요. 길 안막혀, 사람 안북적대, 계속 백수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_-

두 달 간 팽팽 놀다가 9월이 돼서 다시 출판사에 연락을 했죠. 그런데 여전히 바쁘다고, 10월에나 작업이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기분이 나빴지만 별 수 있나요. 참았죠. 그런데 10월이 돼서 다시 연락을 했더니 계속 바쁘다고, 작업을 언제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리뷰나 하자고 하더군요.

리뷰라니? 

석 달 전에는 계획 없다던 리뷰를 이제와서 하자니(..) 여러분, 출간 계약서를 쓸 때 이런 부분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세요. 초고 완성 후 언제까지 리뷰를 하고, 언제까지는 출간을 한다. 확실하게 계약서를 작성해두는 게 좋습니다.

아무튼 별 수 없이 저자 및 역자 몇 분을 선정해서 리뷰를 했죠. (계약서 상으론 제가 갑이지만 사실은 을이더군요) 2주 정도 지나서 리뷰 결과가 나왔는데, 많은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대부분의 비판은 문체 등 표현 부분에서 발생했습니다. 사실 제 책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업계에 대해 비판적인 표현이 좀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책의 표현 강도는 사실 초고에 비하면 굉장히 많이 완화된 겁니다.

예를 들면 '기술을 대우하지 않으면서 기술 발전이라는 요행을 바라지 말자'라는 문장의 원래 표현은 '기술을 대우하지 않으면서 기술이 발전하기 바라는 도둑놈 심보를 갖지 말자'였습니다. 많이 쎄죠? 이왕 문제 제기할 거, 쎄게 하자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업계를 비관적으로 표현해서 종사 희망자들의 의지를 꺾는다 등등, 한마디로 책으로 출간할 수 있는 표현물이 아니라는 리뷰 의견이 있더군요.

좀 의외였습니다. 실무자라면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 제기에 대해서 공감해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리뷰를 했어야 되는데 경험이 부족한 탓에 살짝 멘붕이 왔습니다.

하지만 문체는 다듬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술적인 부분은 지적이 없으니 별 문제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죠. 그런데 출판사가 리뷰 이후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합의된 목차대로 완성됐음에도 자신들이 생각했던 책이 아니라는 둥, UTM이나 DPI 등의 단어가 등장하지 않으니 기술 수준이 낮다는 둥(..) 계약 엎고 싶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더군요.

하지만 1년 이상 책에만 매달려온 상태에서 계약 해지하기 싫었습니다. 최대한 출판사 요구를 수용해서 출간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죠.

문체를 다듬고, 내용을 추가하고, 제목('완성'이란 단어는 제 안어울린다고)을 바꾸는 등 많은 부분을 수용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리뷰어 한 분이 소개 사례의 출처에 대해 추가로 문제 제기를 하면서 일이 커지더군요.

출판사가 출처를 모두 공개해달라고 하더군요. 자기들이 출간 허락을 받아오겠다고(..) 출간하기 싫다는 강력한 의사 표현이라 생각했습니다.

이것 역시 계약 전에 문의를 했던 사항이거든요. 모자이크 처리하면 문제없다로 협의가 끝난 사항이었구요. 결국 계약 해지를 했습니다. 이 때는 진짜 멘붕이 오더군요.


한 달 정도 아무 것도 안하고 지내다가 11월이 돼서야 다시 책을 손보기 시작했습니다. 어쨌거나 책은 팔려야 하고, 읽혀야 의미가 있다고 한 리뷰평을 곱씹으면서 문체를 최대한 다듬고, 사례 출처 보호를 좀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수정 작업을 진행했죠.

뒤늦게 깨달았지만 리뷰어분들의 비평 덕에 제 책이 좀 더 책다워지고 출간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네요(..)

그렇게 두 달 정도 수정 작업을 한 후, 다음해 1월부터 다시 다른 출판사에 출간 여부를 문의하기 시작했습니다. IDS? 보안관제? 흥행이 어렵다면서 계속 거절을 당하다가 겨우 현재 출판사와 계약을 하게 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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