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1학년 입학했을 때 처음 배웠던 게 ㄱ, ㄴ ㄷ, ㄹ... ㅏ, ㅑ, ㅓ... 그리고 자기 이름 쓰기, 뭐 그랬던 것 같다. 요즘엔 수준이 더 높아졌겠지.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초등 교육 커리큘럼의 기본 전제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말은 할 줄 알겠지
한국 살면서 한국말을 모르면 많이 답답할 것이다. 이 사람은 왜 웃고, 저 사람은 왜 화를 내는지 알 수 없고, 결국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게 된다. 그 상태에서 학교 교육을 받으면? 생존이 위태위태한 상황인데 학습이 순조로울 리 없다.
무언가를 새로 배울 때는 항상 사전 지식이라는 기초가 있어야 한다. 비행기를 한쪽 엔진만으로 착륙시키는 법을 배우려면 먼저 멀쩡한 엔진이 두 개 달린 비행기를 착륙시킬 줄 알아야 한다 -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15페이지)
운영체제/네트워크 배경 지식은 갖고 있겠지
IT, 특히 보안 교육 커리의 기본 전제. 분석 대상의 대부분인 로그/트래픽 데이터는 네트워크로 상호작용하는 운영체제를 배경으로 발생한다. 한국 사회에서 살기 위해 한국말을 알아야 하듯, 데이터를 이해하려면 배경이 되는 운영체제/네트워크를 알아야 한다는 얘기.
그래서 IT 종사자가 대부분인 기업 교육 대비 국비 과정 교육이 힘들 때가 있다. 국비 과정은 사업 수주에 유리한 각종 화려한 (빅데이터, AI, 보안 전문가 등) 타이틀로 포장되기 십상인데, 배경 기술 이해도가 천차만별인 학생들에게 상위 기술 학습이 쉬울 리가 있나.
그래서 교육 때마다 운영체제/네트워크의 중요성과 기본 개념을 강조한다. 그래야 실무 응용이 가능하니까. 하지만 상위 기술 학습에만 집착하는 학생이 나타나는 현상을 막지는 못한다. 특히 배경 기술 이해도가 낮을수록 이런 현상은 심해진다.
이 작업을 왜 하는지, 각 단계들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연결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먼저임을, 결국 기본이 중요함을 아무리 강조해도, 수업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일단 상위 기술(스플렁크 등 유명 소프트웨어)의 기능이나 명령어라도 외우고 보자는 심리를 갖게 하는 모양.
대다수가 컴퓨터 관련 전공임에도 이런 일이 잦은 이유는 학부 커리큘럼의 한계에서 비롯되지 않나 싶다. 다양한 개개인이 각자 최선의 분야에서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을 갖게 하는 건 좋은데, 그 과정에서 컴퓨터의 기반인 운영체제를 소홀히 대한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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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대 컴퓨터공학부 커리큘럼 |
스마트폰 세상 이후 태어난 세대는 컴퓨터를 스마트폰처럼, 제공하는 기능 범위 내에서만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IT를 업으로 삼지 않는다면 노 프라블럼. 하지만 반대라면 많이 곤란해질 수 있다. 교육 때 반드시 하는 얘기가 있다.
사용자가 아니라 생산자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같은 툴, 같은 기술이라도 여러 상황에서 다양한 응용이 필요해지는 게 IT 분야. 제공된 기술 범위 안에서 내 편의만 도모하면 되는 사용자가 아닌, 기술 이해를 바탕으로 응용과 확장이 가능한 생산자가 되어야 사용자에게 기능과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당당하게 대가를 요구할 수 있다.
이때 PC를 조립해 쓰던 세대처럼 세팅 역량에 따라 컴퓨터 기능 범위가 달라지는 결과를 몸소 느끼는 경험이 필요하다. 내가 사용하는 계정의 권한 범위를 알아야 하고, 프로세스와 자원 사용 현황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작업이 운영체제에서 이루어진다.
생산자 입장에서 운영체제를 익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 사용자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얘기. 학부 커리에서 운영체제 과정 보강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이유. 리눅스 한 백번 정도 설치 반복하면서 쓰다 보면 설치가 만만해지고, 여유가 생기면서 웹이나 DB도 쉽게 시작할 수 있고.
내가 마음 먹었을 때 언제든지 설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 이후엔 자연스럽게 다양한 용도가 생겨나고, 그 용도에 따라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 남이 설치해준 운영체제의 시커먼 명령 프롬프트 창이 주는 두려움을 쉽게 극복할 수 있게 된다는 것.
다행히도 이 분야는 새로운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게 아닌 이상, 기능적인 성격이 강하다. 기능은 기술보다 단순하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삽질 잘 하는 방법? 삽질 많이 하면 된다. 운영체제? 많이 써보면 는다.
배우기도 쉽다. 자동차 기술 배우려면 자동차가 필요하다. 컴퓨터 기술 배우려면 컴퓨터가 필요하다. 뭐가 더 배우기 쉬울까? 체계적 학습을 도와주는 책(또는 동영상이나 LLM)도 많다. 운영체제 분야는 대부분 네트워크 과정을 한꼭지로 포함하고 있으니 얇은 책으로 시작하면 된다.
나가며
감히 장담하는데 스플렁크도 스플렁크로 데이터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사람을 원하지, 스플렁크만 잘 쓰는 사람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데이터를 모르면서 스플렁크만 잘 쓸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공식문서를 다 외우면? 시험 문제는 잘 풀겠지만, 이론과 현실, 암기와 응용은 다르다.
솔직히 암기에 자신 있다면 법으로 파이가 보장되는 의사나 판검사 공부하는 게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하는 방법. 그게 싫다면 종사하려는 분야의 작동 배경과 기본기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내가 회사를 선택하지 않는 이상, 내가 뭘 잘하든 결국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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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휘강 교수의 조언 |
끝으로 조급해하지도, 테크트리(?) 같은 거에 연연하지도 않았으면 한다. 강사가 잘 하는 이유는 먼저 경험했기 때문. 꾸준히 노력하면 시간이 다 해결해준다. 이때 필요한 게 관심 분야를 찾는 것. 재미를 느끼는 분야가 생기면 관련 스킬 구사에 어떤 기본기가 필요한지 알아서 찾아 공부하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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