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9일 금요일

해커가 되고 싶나요?

올해 방영된 'CSI : Cyber'보다 무려 3년이나 앞서 제작된 본격 사이버수사 드라마(라고 쓰고 보안인력 양성 드라마라고 읽는) '유령'.

이연희씨랑 같이 일 하고 싶다^^;

효과는 꽤 있었던 듯 하다. 대한민국 정보보안의 미래가 밝아 보인다(..)


그 밝은 미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답을 달아봤다.
  1. 컴퓨터 분야는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다. 정보올림피아드 같은 데 나가는 청소년들 보면 나도 잘 모르는 자료구조 같은 거 줄줄 외운다. 대신 유지(?) 장벽은 높은 편. 새로운 기술에 적응 못해도 무능력자, 40대 이후에 기술만 붙잡고 있어도 무능력자.
  2. 글쎄, 나도 해커가 되고 싶다(..) 그래도 아는 체를 좀 해보자면 일단 운영체제를 많이 써보고, 웹/DB 같은 여러 서비스도 돌려보고, 동작원리도 이해하고 하다보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3. 왜 학원을 가려고? 컴퓨터만큼 독학하기 좋은 분야가 어디 있다고.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되지. 책값 싸지.
  4. 웬수같은 영어는 꼭 좀 하세요.
  5. 어느 분야나 상위 1%는 돈 잘 범.

왠 지식인 코스프레? 

어제 정보보안 분야에 종사하고 싶다는 어느 학생의 메일을 받았다. 전공과 달라서 학원에서 기초를 다지고 싶은데 조언을 얻고 싶다는 내용.

학원에서는 해커가 되고 싶어하는 학생에게 500만원 상당의 교육 과정(c언어, 자료구조, 윈도우, 리눅스, 유닉스, ccna, java, tcp/ip, 리버스 엔지니어링, 웹/네트워크/시스템보안, 포렌식, 악성코드 분석 등)을 추천했나 보다.

얼마나 체계적으로 과목별 학습을 지원하고, 그 성취를 융합해 해커의 소양을 쌓게 해주는지는 모르겠지만, 돈과 시간만 허락한다면 다양한 분야를 경험해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중 단 한 가지에서만이라도 재미를 느끼고, 성취감을 맛 볼 수 있게 된다면 장기전을 해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기대감만으로 돈과 시간을 무리했음에도 이해와 응용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 좌절감은 누가 보상해줄까? 파는 사람이야 내 상품이 최고인 게 당연하겠지만, 왜 많은 학생들은 아무런 정보도,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해커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인간의 파괴 욕구를 자극하나?-_-

수트빨도 멋진 해커같으니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지만 그래도 원하는 답을 주자는 생각에 이거, 저거 선택해서 다녀보라고 할래다가, 시작이 해커에 대한 단순한 동경은 아닐까 싶은 오지랖에 김휘강 교수의 글을 먼저 읽어볼 것을 권유했다. 


남이 보여주는 이미지만 가지고 선택하기 전에 평생 생계 수단이 될 수 있는 직업에 대해 한번 더 고민해봤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는데, 오죽 답답했으면 생판 모르는 나에게 그런 질문을 했을까 싶으니 다시 생각해보라는 뉘앙스의 답을 준 게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어째 잠이 오지 않는다.

김휘강 교수의 글을 요약하면
  1. 정보보안 분야는 성장이 힘든 작은 시장.
  2. 정보보안 직군은 경찰, 소방관과 유사. 한마디로 빡셈. 공무원은 정년이라도 보장되지
  3. 한 번뿐인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란 관점에서 직업 선택은 신중하게.

남 얘기라 편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 역시 학생 시절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전에 직업 선택 계기를 잠깐 소개했었지만, 사실 컴퓨터는 주로 게임하고, 채팅이나 했지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취직이 어렵지 않던 시절이었으니까.

하지만 IMF 덕에, 그리고 당시 불었던 IT 광풍에, 유망하다는 말에 휩쓸려 조그만 벤처에 입사하게 됐고, 여기까지 흘러오게 됐다. 컴퓨터에 재미를 못 느꼈다면 지금 뭐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알바할 때 자기 밑으로 오라던 대리석 시공사 사장 말 들었으면 지금 어땠을까? CAD 배우다 소개 받은 건축회사 다녔으면 어땠을까? 2006년에 잠시 한 눈 팔았던 보험회사 계속 다녔으면 어땠을까? 뭐 다 내 복이고 그중 운 좋게(?) 재밌는 거 했으니 됐다고 생각한다.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이 멋져보이는 것과 내가 그들처럼 성공한 극소수의 연예인이 되는 것은 단 1그램도 관계가 없다. 나중에 덜 후회하기 위해서라도 이 일을 왜 하고 싶어 하는지, 어떤 성취를 얻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봤으면 싶다. 나처럼 운에 맡기지 말고(..)

그러고도 내 길은 해커뿐이라는 확신이 들 때, 그 때 그 길을 가도 늦지 않다.

사족
방송에서, 업계에서, 나라에서 끊임없이 얘기한다. 해커가, 보안전문가가 유망하다고. 그런데 부족하다고. 유망한데 왜 부족할까? 판검사, 의사는 왜 유망하다고 광고하지 않을까?

미국 서부시대 골드러시 때 금 캐서 돈 번 사람보다 청바지 팔아서 돈 번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이 책 보면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이 기술 배우면, 이 자격증 따면 취직 잘 될 거야. (미국에서 유행하는) 최신 기술이니까 안전할 거야. 사람들 부추기면 돈 벌기 쉬운 세상이다.

10년 전에도 유망했던 보안전문가
10년 후에도 유망해 보이는 보안전문가
10년만 더 버텨보아요
얘도 꽤 오랫동안 유망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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