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8일 일요일

팩트풀니스

한스 로슬링과 그의 아들, 며느리 공저. factfulness는 저자가 만든 합성어인데 '사실충실성'쯤으로 해석되는 듯.

'팩트'라는 단어의 힘 때문인지, 제목이 주는 임팩트가 상당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깜짝 놀랄 통찰을 기대하며 읽기 시작.

하지만 기대감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아 실망으로 바뀌었다. 요란한 빌 게이츠 마케팅 만큼의 빈수레는 아닌데(..)

일단 저자는 편향에 사로잡히지 않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긍정적인 세상에서 살 수 있다고 얘기한다.

"자산이 1만 달러만 되어도 세계 상위 25%에 들 수 있다... 혹시 노트북이 있고, 괜찮은 CD 좀 모아놓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상위 50%다! " - 인포그래픽 세계사 (152페이지)

그의 주장에는 전반적으로 동의한다. 실제로 세상은 지속적으로 나아지고 있다. 수백, 수천 만이 굶어 죽고, 총칼에 죽어나가던 과거에 비하면 지금 인류는 역사상 가장 안전하고,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인생을 백년 전으로 리셋할 수 있다면 하겠는가? 비트코인?

인포그래픽 세계사 (102페이지)

그런데 별로 새롭지는 않다. 스티븐 핑커가 이미 2011년에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다 한 얘기인데? 세상이 좋아졌다는 근거로 다양한 통계를 제시하는 방식까지 비슷. 줄줄이 늘어놓는 편향 본능도 심리학 분야의 단골 메뉴들이고.

핑커는 문명 판단 기준을 사망자 수로 단순화했다. 그리고 우리는 판단이 쉬운 해피엔딩 (선악 구분이 뚜렷한 백설공주같은) 스토리를 좋아한다. 핑커의 성공 요인. 당시 핑커 찬양을 보면 빌 게이츠도 이런 스토리를 참 좋아하는 듯(..)
그것에 대해 내 기분이 어떤가? 처럼 쉬운 질문이 그것에 대한 내 의견은 무언인가? 처럼 어려운 질문의 답을 대체한다 - '생각에 관한 생각' 중
항우울제의 약효가 긍정적으로 나온 연구는 94퍼센트나 발표된 반면, 긍정적이지 않은 결과를 얻은 연구는 14퍼센트만 발표 - '벌거벗은 통계학' 중

관점이나 접근 방식의 변화를 통해 좀 더 발전되고, 좀 더 풍부한 해석을 제공하는 것이 선행 연구를 사용하는 후행 연구자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통계만을 잔뜩 수집해 보여주며, 핑커의 성공 방식을 답습, 강화한다.

물론 선행 연구를 뛰어넘지 못했다고 해서 형편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 책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라. 현실(통계 숫자)을 낙관적으로 바라봐야 막연한 비관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나름 좋은 메시지를 전한다. 어쨌든 낙관주의는 비관주의보다 세상 살기 쉬운 방법

그런데 너무 단순하다. 인간은 자신에게 불리한 숫자를 좋아하지 않으며, 나고 자란 환경이 심어준 고정관념(or 삶의 지혜)은 숫자를 가볍게 제압한다.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숫자로 세상을 판단하는 게 그리 간단했으면 세상이 이렇게 복잡해졌을까?
 
결정적으로 실망스러웠던 이유는

어느 공무원의 개돼지 발언을 떠오르게 하는 저자의 선민의식 때문.

어떻게 대부분 침팬지보다 점수가 낮을 수 있을까? 눈 감고 찍느니만 못하다니! (22페이지)

인간이 사고와 경험, 학습을 통해 오류를 정정해나간 덕분에 세상이 이만큼이나 나아졌음을 모를 리 없음에도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스스로 뭘 하는지도 모르는, 겨우 자아(?)를 인식할 뿐인 침팬지보다 못한 존재로 인간을 격하시킨다. 그리고 이렇게 얘기한다.
무지를 뿌리 뽑으려면 사람들의 지식을 업그레이드해야 했다 (24페이지)

인간 개조? 이런 저자의 무례함은 후반부에서 가서 정점을 찍는다.
거대 제약 회사가... 아주 가난한 사람만 공격하는 질병도 아예 연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 회사 주식은 누가 갖고 있을까? ...은퇴 기금이야... 이번 주말에 할머니를 찾아가서 면상을 갈겨드려. 비난할 대상이나 때릴 대상이 필요하다 싶으면 그건 노인과 안정된 주식이 필요한 노인의 탐욕이란 걸 기억해 (293페이지)

순간 눈을 의심했다. 할머니 면상을 갈기라니? 자신의 수업을 받는 학생에게 진짜 이렇게 말했다고? 번역 잘못된 거 아냐?


와 팩트였네 세계적 석학으로 불린다는 사람이 학생 하나 바보 만들어가며 자신의 통찰을 뽐내는 상황이 놀랍다. 그걸 또 자랑스럽게 책에 옮겨 놓은 상황은 더 놀랍다.

서양인들은 지식 전달을 위해서라면 이정도 표현은 용인해주는 너그러운 토론 문화를 가진 걸까? 난 동양인이라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지 못한 체 손가락을 탓하고 있는 걸까?

타인을 돕고 싶을 때는 보통 두 가지다. 순수하게 도움을 주고 싶을 때, 아니면 자신이 돋보이고 싶을 때. 꼰대로 불리는 사람들은 그 잠깐의 자기 자랑 욕구를 참지 못해서 도움을 주고도 꼰대가 되더라.

저자는 인간의 무지를 안타까워한 현자일까? 그냥 꼰대일까? 할머니 얘기만 없었어도 별 셋은 줬을텐데(..) 마지막으로 저자에게 묻고 싶다. 책에서 제시하는 수많은 통계들, 다 비교하신 거죠?
하나의 수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믿으면 절대 안 된다. 수가 하나라면 항상 적어도 하나는 더 요구해야 한다. 그 수와 비교할 다른 수가 필요하다. (18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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