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정 말기, 명문가의 자제였던 티베리우스와 가이우스, 두 형제는 평민들의 경제적 몰락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군사력 약화를 막고자 농지개혁, 세재개편 등의 급진적인 사회개혁을 추진한다.
그러나 개혁정책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우려한 원로원 귀족들의 반대에 부딪치고 결국 형제 모두 죽임을 당함.
"변화를 원하는 이들과 거부하는 이들의 충돌은 극단으로 내달려 티베리우스를 비롯한 그의 지지자 수백 명이 맞아 죽었다." (206페이지)
"원로원은 가이우스 일파를 폭도로 규정했다... 형이 당했던 것처럼 가이우스는 물론 그를 따르던 사람들 수천 명이 죽임을 당했다." (211페이지)
인간은 언제나 합리적?
법치주의를 체계화시켰다는 로마는 왜 형제의 개혁에 대해 이토록 야만스럽게 대응했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심리학으로 경제활동을 설명한 행동경제학에서 찾는다. 일단 경제학, 특히 고전 경제학은 모든 인간을 합리적 판단 주체로 본다고 한다.
(인간은) 최선의 방법으로 효용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합리적 존재이자 일관성 있는 존재. 그리고 결국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선택을 하는 이기적 존재. (214페이지)
두 형제의 개혁정책은 전쟁하느라 농사를 못짓는 바람에 가난해진 평민들에게 경제적 안정을 제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로마 번영의 초석을 다지려는 의도였다. 로마가 번영할수록 원로원 귀족들 역시 부유해는 건 당연지사. 그런데 왜 악착같이 두 형제를 반대했을까?
198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경제학자 모리스 알레는 이런 문제를 제기했다. 일명 '알레의 역설'.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선택이 반드시 (작은 이익과 큰 이익 중 큰 이익을 좋아한다는) 기대효용을 따르지는 않는다 (216페이지)
다음은 심리학 관련 책에 자주 등장하는 실험 사례. 사람들이 항상 큰 기대효용을 추구한다면 정답은 'B'이다.
- A) 100만원 벌 확률 100% (기대값 100만원)
- B) 500만원 벌 확률 10%, 100만원 벌 확률 89%, 한 푼도 못벌 확률 1% (기대값 139만원)
그러나 실제 실험 결과는 A를 더 많이 선택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항상 합리적이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2002년 이스라엘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전망 이론'을 통해 사람들이 의외로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혀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다.
'전망 이론'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사람들은 만원을 벌었을 때의 기쁨보다, 잃었을 때의 고통이 훨씬 크기 때문에 이익이 기대되는 상황에서는 안전하게 이익을 거두는 선택을, 손실이 기대되는 상황에서는 손실을 줄이기 위해 모험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다음 조건에서 사람들은 'F'를 많이 선택한다고. (이익이 보장되는) 앞선 사례에서 사람들은 기대값보다 안전을 선택하는 비중이 높았지만, 손실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기대값이 높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3,000만원에서 손실을 끝낼 수 있는 상황이 4,000만원까지 커질 수도 있게 된다.
- E) 3,000만원 잃을 확률 100% (기대값 0)
- F) 4,000만원 잃을 확률 80%, 잃지 않을 확률 20% (기대값 800만원)
2008년 웬 개잡주에 물렸다가, 절대 손해볼 수 없다며 4년을 물타기한 결과 50% 손해본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
결국 먼 미래의 이익보다 당장의 손실을 못견뎌한 원로원의 비합리적 행동 때문에 그라쿠스 형제가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흥미로운 점은 전체적으로 이득인 개혁정책의 일부가 주는 손실 때문에 그라쿠스 형제를 반대한 평민들도 많았다는 것.
개혁과 변화를 싫어하는 부유한 사람들은 물론, 이를 원하는 사회적 약자마저도 잠재적 손실에 너무나 민감하게 반응했다. (223페이지)
먼 미래의 이익을 위해 당장의 손해를 참을 수 있느냐? 고통 분담을 위해 세금 더 낼 수 있느냐? 좋은 거 알면서도 당장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아까운 나를 봐도 참 어려운 문제다.
협력과 배반의 게임
그라쿠스 형제의 죽음 이후에도 원로원과 평민을 대리하는 여러 권력자들의 암투가 지속되는데, 이 과정에서 저자는 이런 의문을 제시한다.
메텔루스와 마리우스, 마리우스와 술라, 술라와 킨나의 관계는 공통점이 있다. 협력과 배반이 가능한 상황에서 협력보다는 배반을 선택하고, 그 결과 양쪽 모두가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 왜 사람들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협력보다는 모두에게 손해를 끼치는 배반을 택하는 것일까? (229페이지)
그리고 '죄수의 딜레마'를 빌어 로마의 공화정 말기를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개인적으로 분명 이득이 되는 상황을 선택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손해가 되어서 결국 자신도 손해를 입는 딜레마의 상황이 바로 공화정 말기의 로마 (235페이지)
이 딜레마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이 해법을 찾기 위한 '죄수의 딜레마 대회'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한 '팃포탯'이란 전략이 있다. 최초 협력으로 시작, 이후에는 상대방의 전략을 그대로 따라하는 방식.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러나 저자는 이 전략의 현실적 한계를 지적한다. '팃포탯'은 협력과 배반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때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선택이 마지막 선택이 될 수도 있는 현실에서는?
결국 이 전략은 이기는 게임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게임을 하지 않도록 소극적으로 설계된 것 (240페이지)한 번 지는 것이 영원히 지는 것일 경우에는 이기려는 전략보다 지지 않으려는 전략인 배반을 택하게 된다. 이것이 공화정 말기의 현실이었다. (241페이지)
몇몇 책들이 '팃포탯'을 장점 위주로 소개하는데 반해, 이 책은 사례를 통해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역시 사람이 만든 것치고 완벽한 건 없나 보다. 이런 '팃포탯'의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을까? 관련 연구가 있긴 하다. 저자가 소개하는 방법은 '권위자의 중재'.
두 집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쪽 모두에게 권위가 있는 사람이 중재를 하면 된다는 것 (241페이지)
그러나 이 역시 현실에서는 그닥이었다고.
독재관 술라는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공화정 로마의 갈등, 즉 개혁파와 보수파의 갈등을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사실 그가 한 일은 갈등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잠시 덮어둔 것에 불과 (244페이지)
어렵다. 정말 모두에게 권위를 인정받는 사람이 있다면 중재에 나서고 말고 할 필요도 없겠지. 그냥 그가 다 맡아서 하면 되니까. 문제는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경제학에서도 자유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균형을 잡아주니 정부 개입이 필요 없다는 주장과, 정부 개입이 필수라는 주장이 자주 충돌하는데, 시장 참여자 개개인의 최선이 모두에게 최악으로 작용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중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부의 중재가 성공하려면 모두가 자발적으로 인정할만큼 올바른 권위를 가진 정부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모두에게 사랑받는 게 가능한가? 술라의 권위도 무력을 앞세워 강제로 얻어낸, 무서운 귄위였을 뿐이었다. 역시나 참 어렵다.
결국 술라의 죽음과 함께 터져나오기 시작한 공화정 로마의 갈등과 사회 혼란은 종신 독재관 카이사르가 나타날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244페이지)
책은 이렇게 끝이 난다. 갑작스런 마무리에 당황. 인간 사회의 갈등 구조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인가? 에이 몰라. 사상 최대의 연휴가 시작됐다. 에블바디 즐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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