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아파서 수영을 시작한지 벌써 3년째가 되어 간다. 독학으로 배운 수영이라 폼이고 뭐고 엉망이지만 이제 물이 무섭지는 않다. 작년부터는 잠영을 시작했다. 왠지 필요할 것 같아서.. 이제 25미터 정도는 수월하게 간다.
요령은 물 속을 겁내지 않는 것이다. 물을 겁내는 것과 물 속을 겁내는 것은 약간 얘기가 다르다.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물과 공기의 경계에서 필요할 때 숨 쉴 수 있는 요령을 익혔다는 얘기인데, 물 속에서 그런 요령따위는 없기 때문.
물 속에서는 숨을 참는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게 당연히 어렵다. 물 밖에서 30초 정도 참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데, 물 속에 들어가면 이상하게 잘 되지 않는다. 아마도 살고 싶다는 본능, 잘못하면 영영 물 밖으로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 때문일 것이다.
실제 물 속에 들어가면 그냥 빨리 나가고 싶어진다. 물 밖으로 나가서 숨 쉬고 싶어진다. 한 뼘만 올라가면 공기가, 산소가 가득한데 내가 지금 물 속에서 뭐 하나 싶어지는 거다.
숨 쉬고 싶다는 욕망, 이거 극복하는 게 은근히 힘들었다. 하지만 나같은 맥주병이 수영 배우면서 느낀 건데, 인간이 하겠다고 맘 먹으면, 정말 꾸준히 하면 되는 분야도 있는 것 같다.
2미터 깊이의 수영장 바닥에 앉거나 또는 누워서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당연히 속으로 부른다. 처음엔 1절도 다 못불렀는데 이젠 4절까지 부를 수 있다. (물론 굉장히 빨리 불러야 한다)
처음엔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폐의 공기를 웬만큼 빼지 않으면 잘 가라앉지 않는다. 공기를 계속 빼내면, 날숨을 계속 쉬면 몸이 가라앉기 시작하는데, 원하는 만큼 가라앉게 되면 그 때부터 들숨과 날숨을 번갈아가며 쉬면 된다.
당연히 들숨은 쉬었다 치고, 날숨만 조금씩 쉬어야한다. 아예 숨을 참는 것보다는 확실히(?) 더 오래 물 속에 머물 수 있는데, 숨 쉬고 있는 듯한 착각 때문인지, 아니면 이산화탄소가 배출돼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애국가를 3절 이상 부를 수 있게 되면서 25미터를 잠영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애국가 2절이 채 끝나기 전에 25미터를 갈 수 있는데, 그 때 물 밖으로 나가서 숨 쉬고 싶어하는 욕망의 크기가, 가만히 앉아서 3절 이상 부를 때랑 비슷하다.
아무래도 몸을 움직이면 산소를 더 많이 소모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잠영할 땐 동작을 천천히, 정확하게 하려고 한다. 빨리 움직여봐야 산소만 빨리 떨어질테니까.
그런데 몸이 자꾸 저절로 빨라진다. 천천히 움직이고 싶은데 머리가 몸을 제어하지 못한다. 잠영하면서 자꾸 세뇌를 해줘야 한다. '난 지금 정말 편하다', '나에겐 아가미가 있다' 등등
신기한 경험도 할 수 있다. 당장 물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정신을 잃을 거 같을 때, 물 속임을 뻔히 알면서도 입을 벌리고 코를 열고 싶어질 때, 마치 사정(?)할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고통을 줄이기 위해 뇌가 분비하는 화학물질 때문인가? 목을 메고 죽을 때 쾌감을 느낀다더니 정말이구나 싶어서 오싹해진다. 물론 물 밖으로 나와서야 드는 생각이고, 그전까지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빨리 물 밖으로 나가야 된다는 생각뿐.
언젠가는 바다에서 잠영을 하는 날도 오겠지? 바다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처음 바닷물을 먹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 구역질나는 짭짤함이라니..
1년 전 오늘, 304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아직 차가웠을 4월의 바다에 잠겨 나오지 못했다. 짜디짠 바닷물 속에서 얼마나 숨 쉬고 싶어했을까? 다시 한 번 그들의 명복을 빈다.
16. 4. 16.
배는 두 시간여에 걸쳐서 천천히 가라앉았다.
17. 4. 16.
3년 만에 떠오른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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