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일 목요일

싸우는 심리학

대통령 심리 분석으로 화제가 된 바 있는 심리학자 김태형 씨의 심리학같지 않은 심리학 책.

"고대 노예제 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대부분 노예로 살아가고, 중세 봉건제 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농노로, 현대 자본주의 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노동자로 살아간다" (34페이지)

맞는 말이다.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결국 사람들은 철저하게 짜여진 사회제도나 구조에 얽매여서만 살아갈 수 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알아봐야 머리만 아픈 그런 내용. 설령 금수저가 아니라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해도, 사회나 사회 관계로부터 영원히 고립될 수 있는 공포를 극복하기 전에는 그런 제도나 구조를 거부하지 못하니까.

저자는 1900년대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을 빌어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자본주의때문에 현대 사회와 인간은 병들었다고 단호히 얘기한다. (먹고 살기 바빠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을 뿐, 이미 많은 이들이 그러리라 짐작하고 있지 않을까?)

자본주의 사회는 소비가 미덕이다. 소비가 많을수록, 결국 돈이 많을수록 인정받는 사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해 더 많은 돈과 더 큰 성공을 원하며, 결과적으로 스스로 잘 팔리는 상품이 되려고 노력한다.

나도 그랬다. 대학 가고, 자격증도 따고, 영어 학원도 다녀보고, 좋아하는 일임에도 보수가 맘에 안차서 보험왕을 꿈꿔보기도 하고, 주식 투자도 해봤다. 투자는 투기로 이어지고 성공하기 위해 나를 더 비싼 상품으로 포장하고, 돈을 벌기 위해 벌인 일들이었다. 물론 책도 그래서 썼다.

책 써서 돈 벌겠다고?

모두 내 자유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성공을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이유는 스스로의 자각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유리한 사회 의식을 지속적으로 주입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경쟁속에서 유지되고, 성장한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이란 책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

"자본가가 이윤 추구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자본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조차 더 큰 자본가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며, 자신의 승리를 위해 필연적으로 노동자의 경쟁을 부추겨야만 한다. 그리고 그런 동기는 언론, 교육, 광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시장 경쟁이 인간 본성에 가장 잘 어울리는 제도라는 사상을 주입하게 만들었다.

결국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이 어울리는 동물이라서, 이기심이 인간 본성이어서가 아니라, 뭔가를 팔아야만 먹고사니즘이 해결되고, 남보다 더 많이 팔아야만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자본주의라서 무한경쟁을 당연시, 또는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사람들 머리속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 결과는 저자가 최대의 재앙으로 규정한, 사람까지 상품으로 취급하는 자본주의 세상의 도래.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에게 탐욕이 보편화되어 있고(무단횡단도 두 명 이상이면 떳떳해진다더라), 돈에 대한 탐욕만이 나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다고 믿겨지는 세상, 당장 먹고 살만할지라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더 더 벌어놔야 하는 세상.

저자는 심리학을 넘어서,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해결방안들을 제시한다. 그 중 흥미로웠던 내용은 전국민에 대한 최저생계비 지원. 기본적인 먹고사니즘이 해결되면 인간의 존엄성 회복은 물론 끝없는 경쟁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로의 변화가 가능다는 주장이다. 음 좋은 말이긴 한데, 학교에서 학생들 밥 줄 돈도 없다니 뭐(...)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빈부 격차, 사회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지는 추세다. (18대 대선 이슈가 부를 나누자는 경제 민주화) 소비를 먹고 크는 자본주의에겐 안좋은 소식이다. 대다수 소비자인 노동자들이 돈이 없어 갈수록 소비를 줄일테니.

신자유주의를 등에 업고 해외로 소비를 확장시킨다고 해도 언젠가는 한계에 부딪칠 수 밖에 없다. 그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때를 대비해서라도 벌 수 있을 때 더 벌어놔야 하나?

2011년 자본주의의 심장에서 벌어진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는 자본가와 자본가를, 자본가와 노동자를, 노동자와 노동자를 끊임없이 경쟁하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한계를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전 세계에 퍼트리는 데 기여하던 IMF조차 세계 경제 안정을 위해 소득 불평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파이를 키워가면서 해먹자는 얘기.

앞으로 자본주의는 어떤 얼굴을 갖게 될까? 저자는 열 명의 의인을 기다린다고 했다. 나는 열 명의 깨어있는 자본가를 기다려 보고 싶다(..)

기억에 남는 문구를 남긴다.

"극심한 경쟁속에서 느끼는 고립감과 무력감을 해소하면서 현실을 외면할 수 있는 방법 - 하찮은 대화, 말초적 잡담" (195페이지)

"병든 사회가 병든 인간을 낳는다" (257 페이지)

"피난처로서의 사랑 - 빈곤에 대처하기 위한 경제적 동맹과 사회적 위신을 위한 동맹" (31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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