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4일 화요일

편 가르는 사회

지난 17일 강남역 인근에서 한 젊은 여성이 살해당했다. 정신질환 또는 개인적·사회적 좌절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한 가해자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던 약자 혹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나만 조심하면 뭐하나? 작정하고 덤벼들면 장사 없다.

가해자의 진술을 들어보면 과거 정신질환 병력도 의심스럽지만 주로 원만하지 못한 사회 관계가 범행 동기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사실 많은 정신질환이 비정상적인 사회 관계에서 야기되고 있으니 선후 관계를 따지기도 힘들겠다.

사회적 소속·유대감의 결여로 인해 충족되지 못한 인정 욕구는 자기 파괴적 또는 반사회적 행동으로 표출되게 마련. 사회 부적응이 야기하는 이런 반사회적 비극을 사전에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병든 사회가 병든 인간을 낳는다 - 싸우는 심리학 (257 페이지)

결국 사회가 바뀌는 수 밖에 

그런데 쉽게 바뀔 수 있을까? 이번 피해자에 대한 추모 열기가 뜨겁다. 나 역시 피해자의 억울한 죽음이 너무나 안타깝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런데 추모 양상이 좀 특이하다. 고인에 대한 추모나 가해자에 대한 성토를 벗어나 특정 대상을 향한 분노와 비난이 나타나고 있는 것.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남자를 향한 여자의 분노와 비난이 등장.


남자가 여자를 혐오해서 벌어진 일이라며 남자의 반성을 요구하고, 반성의 행동을 보일 것을 강요한다. 여성 혐오 범죄임을 인정하면, 남자로 태어난 것을 반성하면 제 2의 억울한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이런 현상을 초래한 표면적인 원인은 IMF 이후 불황과 저성장을 배경으로 군가산점 위헌 판결 등이 촉발시킨 남녀 간의 경쟁 구도라고 본다.

동물은 대개 수컷이 먹이를 구하고, 암컷은 새끼를 돌본다. 내 아버지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동안, 어머니는 사남매를 돌보면서 집을 지켰다.

좋은 면만 보자면 남녀가 각자 주어진 역할에만 충실하면 무난한 삶이 보장됐었던 것.

그런데 이제 자연이 정해준 역할만 수행해서는 무난하게 살기 힘든 세상이 돼버렸나 보다. 역할이 섞이니 충돌이 없을 수가 없다.

남녀가 서로를 경쟁자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경쟁자와 사이좋게 지내기는 힘들다.

여성 혐오는 물론 남성 혐오란 단어의 등장 배경일 것이다. 여기서 끝이면 경제만 좋아지길 빌면 되는데(..)

사실은 더 근본적은 원인이 존재

마음에서 우러나올 때만 의미가 있는 충, 효, 예를 강요하는 유교 문화가 바로 그것. "여자와 소인배는 다루기 어렵다 "고 했던 공자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지금까지도 뿌리 깊은 유교 문화의 최대 피해자는 여자임이 분명하다.

공익을 우선해야 할 방송가에서조차 여성 비하 방송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는 유교 문화에서 비롯된 '남존여비' 사상의 영향이 크며, 분명 남자는 상상하기 힘든 좌절감, 무기력을 여자는 경험해 왔을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표출되는 분노가 조금은 이해되는 배경.

원인은 대충 이럴 것이다. 사이가 좋아야할 남녀 관계에 경쟁 문화가 스며들면서 오랜 유교 문화에서 쌓인 불만이 터져나왔다고나 할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경제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유교 문화의 잔재가 남아 있는 한 남녀의 경쟁과 이로 인한 대립의 불씨는 항상 꺼지지 않고 남아있게 된다. 결국 여혐, 남혐 현상이 조금이라도 사라지길 바란다면 수백 년간 또아리를 틀고 있는 유교의 폐해를 털어내야 한다.

여자 혼자 할 수 있을까? 

남자 역할에 속박당한 유교 문화의 또 다른 피해자, 남자와 손을 맞잡아야 한다. 물론 그래도 힘들다. 중국처럼 문화혁명 삽질이라도 하면 모를까, 수백 년 지속된 유교의 폐해가 사라지려면 남녀가 모두 합심해도 아마 한 세대 이상의 희생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편 갈라 싸워봐야 상황만 악화되고, 자칭 페미니스트들의 배만 불려줄 뿐이다.


당신이 '난 아니야 '가 아니라, '나에게서 그런 것을 보게 만드는 이 구조를 함께 바꾸자 '라고 말하게 된다면 좋겠다. '내 뒤로 숨은 구조를 함께 꺼내보자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 어느 페미니스트

탈세 혐의로 맛이 가긴 했지만 함께 양성 평등을 외치자며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던 엠마 왓슨(너도 털면 먼지 나는구나-_-)의 2014년 UN 연설을 떠올려보면 (남자니까) 남자가 먼저 나서는 게 좋지 않겠냐는 페미니즘은 수상쩍기만할 뿐이다. 삼종지도를 따르는, 유교 문화가 원해 마지 않는 여성상 아닌가?

이쯤에서 

남자도 먼저 내민 여자의 손을 맞잡고 적극적으로 양성 평등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로 마무리 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난 꼰대라 그런지 권리와 기회의 평등은 지향하되, 자연이 정해준 성역할의 차이는 인정해야 하지 않나 싶다.

그 차이가 서로를 옥죄기도 하지만 남녀 서로에게 이익을 주는 부분도 분명 있으니까. 사실 그 이익에 나름 만족해서 여태 인류가 유지된 거 아닌가? 결국 남녀는 사이좋게 지낼 수 밖에 없는 운명.

현실에서 남녀 간의 꽁냥꽁냥하기만 한 상황을 보고만(?) 있자면 온라인 상의 첨예한 대립은 고개가 갸웃해지는 부분도 있고, 누구나 가진 이중성의 발현 정도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런 이중적 불만이 한 번씩 터져나오는 것도 폭력성만 동반하지 않는다면 크게 나쁠 건 없는 것 같고. 문제는 터트리지 않으면 해결이 안되더라. 물론 우연에 기댄 자정 작용만을 바라서는 안되니 뭔가 사회적인 대책이 뒤따라야겠지.

그런 의미에서 과거 서울시가 추진했던 여성 행복 프로젝트가 여자의 불안과 불만을 조금은 줄여줄 수 있는 대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밤길에 여자가 앞서 걷고 있으면 잽싸게 추월해 가자는 식의 지하철 광고를 본 기억이 나는데 당시엔 오글거렸지만 생각해보니 방향은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여군의 전사에 눈이 뒤집힌 남자 병사들 때문에 여자를 전투보직에서 제외한 이스라엘군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여자를 살리는 게 남자도 살리는 방법이었던 것. 여자가 행복하면 남자도 행복하지 않을까?

여자를 배려와 보호의 대상으로 보지 말라고? 서로 배려해주고 보호해주면 좋지 않나? 우리끼리 싸우면 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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