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책이 때로는 상대방을 부정하고 때로는 인정하면서 서로의 의견을 피력해나가는 부분이 꽤 재미짐.
클라인은 '긴급한 상황에서 사람은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는가' 라는 정부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소방관, 간호사, 군인 등 여러 직군의 다양한 긴급상황 대처 사례를 분석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연구 결과 직관의 비법은 충분한 경험이며, 직관을 배제한 체 합리적 분석에만 의존하는 의사결정은 합리적∙논리적 근거를 찾아 헤매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충분(?)한 경험에 기반한 직관은 대체로 만족스러운 의사결정을 도출한다고 결론 내린 것. 책을 읽다보면 전반적으로 대니얼 카너먼을 반대하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런데 다 읽고나면 꼭 그렇지만도 않음.
인식-촉발 결정모델
저자는 '긴급상황'에서 경험이 풍부한 의사결정자는 직관(카너먼의 무의식∙감정적이며 빠른 시스템1)을 통해 가장 빠르게 그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리는데, 그 과정에서 '멘탈 시뮬레이션'이란 분석(의식∙이성적이며 느린 시스템2) 단계를 거친다고 얘기한다.
이러니 느리지 |
멘탈 시뮬레이션을 통해 차선 대신 최선을, 최악 대신 차악을 신중하게 비교 선택한다는 것. 그런데 '충분한 경험'을 가진 의사결정자가 직관적으로 선택한 첫 번째 결정은 대체로 만족스러운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다른 결정에 대한 고민이나 비교할 필요가 없다고.
과신은 금물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카너먼은 '시스템1(직관)'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과신'하지 말라고 충고했을 뿐.
'인튜이션'의 게리 클라인 역시 '분석적 방법은 경험이 없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대비책(127 페이지)'으로 저평가하면서도 '시스템2'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카너먼은 그 차이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 둘의 이견은 서로 다른 전문가들을 상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클라인은 소방대장, 임상의 그리고 실제 전문지식을 보유한 다른 전문가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반면 나는 지지할 수 없는 장기 예측을 하려 애쓰는 임상의, 주식 투자자 그리고 정치 과학자들을 연구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 생각에 관한 생각 (316 페이지)
저자 클라인은 화재, 수술, 전투 등의 좁고 특수한 분야를, 카너먼은 넓고 일반적인 분야를 연구했다고 할까?
둘은 '직관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 라는 질문의 답을 함께 찾아보기로 했지만 서로의 연구 대상인 전문가의 다른 영역때문에 완전한 의견 일치에는 실패한 듯 하다.
두 사람이 전문가를 바라보는 관점은 정반대였지만 전문가 양성에 특정 조건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인과관계가 명확하고 일관되게 나타나야 하며, 정확한 피드백을 받으면서 집중적으로 연습해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 운과 실력의 성공 방정식 (215페이지)
예상 가능한 규칙적인 환경, 오랜 연습을 통한 규칙성 습득,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직관을 다듬는 게 가능할 것. 그러나 환경에 규칙성이 없다면 직관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 - 생각에 관한 생각 (317 페이지)
(카너먼) 리더십에 대한 인식은 우유부단하게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람들로 하여금 빠르게 결정을 내리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심사숙고하는 사람 -> 우유부단한 사람 -> 무능력자)
(클라인) 조직이 리더가 얻기를 원하는 대답을 알고 있다면 그 가설을 실험하는 과정은 완전히 오염될 수 있다 (일을 하지 않고, 리더가 원하는 일만 하게 될 수 있다?)
설명하기 어려운 직관
같은 레시피를 사용했음에도 호불호가 갈릴 때, '손맛'은 가장 흔한 핑계가 된다. 한마디로 직관은 '손맛'의 영역이며 너무나 많은 지각적 경험이 얼키고 설켜서 설명하기 어려운, 암묵적인 지식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
손맛의 비결 |
명확한 근거를 대지 못하는 주장은 대게 '그건 니 생각이고' 식으로 묵살당하기 쉽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 많은 데이터가 내 주장의 근거가 되어줄 거라는 믿음으로 빅데이터를 좋아하는 것 아닌가.
결국 사람들은 신기하게 볼지언정 직관에 대한 좋은 평가를 꺼리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자신의 연구 분야가 저평가 받고 있다며 저자는 푸념한다.
조금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나 역시 로그를 분석할 때 특정 패턴을 기준으로 테이블 구조를 만들었던 이유는 왠지 그냥 그렇게 하면 보기에 더 편하겠지 싶어서였다.
그런데 나중에 책으로 쓸려고 보니 그런 식으로 쓰기엔 너무 없어보이는 거다. 결국 뭔가 있어보이는 설명을 찾다 텍스트 정규화란 개념으로 포장을(..)
직관은 분명 존재하며, 저자는 물론 카너먼도 인정했듯이 긴급상황을 포함한 많은 분야에서 우리가 현명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충분한(?) 경험'이 뒷받침되고, 그 경험조차도 잘못된 교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만 않는다면.
저자는 (그가 만나본) 전문가들이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듯 하다. 그렇기 때문의 그들의 직관을 신뢰하고 존중할 수 있었으리라. 진정한 전문가가 되려면 당연히 자신의 한계를 먼저 깨닫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과신하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는 것.
감정과 이성
그런데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의 사고나 의사결정에 대한 연구는 의학계에서도 단골 주제로 등장했나 보다. 뇌과학 연구를 통해 사람의 의사결정은 감정과 이성의 합작품이며, 특히 감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뇌과학 연구 결과는 누구에게 더 유리할까? 사람의 의사결정이 감정에 휘둘릴까 걱정한 카너먼? 이성에만 집중하다 결정장애에 빠질까 걱정한 클라인?
둘 다 이성보다 감정의 영향력에 주목했고, 감정이 주도하는 의사결정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카너먼은 이성을, 클라인은 감정을 더 다듬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접근 방향은 좀 달랐지만 결국 둘은 같은 성격의 연구를 해온 것.
뇌가 이상해지지 않는 한 이성에만 의존하다 결정장애에 빠질 일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비범한 '직관'을 보이느냐, 아니면 말고 식의 '감'에 그치느냐는 전적으로 감정을 얼마나 잘 다스리느냐에 따라 결정되지 않을까?
그런데 이게 마음 먹는다고 되는 건가? 본격 뇌과학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은 감정이 사람의 정신과 행동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정말 아름답게 보여준다. (빙봉 ㅜㅜ)
버럭, 까칠, 기쁨, 소심, 슬픔 5총사 |
내가 뇌인가? 뇌가 나인가? 내 의지는 나의 순수 자유의지인가? 아니면 뇌에서 발생하는 전기 신호에 불과한가?-_- 기억에 남는 문구를 남긴다.
간단해 보이는 임무를 수행하는 데 사실상 얼마나 많은 지각적 경험이 필요한가 - 글 한 줄을 읽고 이해할 때도 수 년, 수십 년간 쌓인 의식∙무의식적 경험의 도움이 필요하다. (204 페이지)(컴퓨터) 시스템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 설계자들이 해결해야 할 난제는 시스템의 의도를 전달해주는 기술이다. (298 페이지)정보가 늘었다고 하여 반드시 불확실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낙관할 수는 없다. - 데이터만 많으면 빅데이터일까? (35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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