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28일 일요일

출간 후기

두 번째 책을 출간한 지 한 달 조금 넘었다. 지식의 범위가 넓어지고, 탄탄해짐을 느낄 수 있는, 책을 쓰는 일은 참 즐거운 경험이다. 하지만 원고를 책으로 만드는 과정은 개인적으로 참 별로다. 첫 번째 책을 출간한 뒤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다.


서너 달쯤 걸린 교정 과정에 대한 심정을 쓴 글. 지워버리고 싶다. 아마 저 글을 쓸 당시엔 교정 과정의 고통을 다 까먹은 모양(..)

작년 10월말, 출판사를 직접 찾아가 두 번째 원고를 넘기면서 기술적인 왜곡이 발생하지 않게끔, 오탈자만 수정하는 선의 교정 작업을 요청했고, 협조를 약속받았다. 약속대로면 1~2개월이면 끝날 거라 예상.

하지만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고, 4월 출간을 하기까지 5개월 간의 교정 과정은 정말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의 나날들이었다. 나를 힘들게 했던 가장 큰 원인은 세 가지.

1. 작업자 임의대로 맥락 수정

교정 작업자는 작가가 최종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나 기술 배경에 대한 이해없이 일괄적으로 자신이 선호하는 단어나 문장 구조로의 변경을 시도했다. 몇 개만 나열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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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물론 요새는 하드웨어 성능이 좋아져서 이런 문제에서 많이 자유로워졌지만
(교정) 물론 요새는 하드웨어 성능이 좋아져서 이런 문제에서 아주 자유로워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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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공통되는 문자열이 없기 때문에 꼭 필요한 백트래킹만을 시도한다.
(교정) 공통되는 문자열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백트래킹만을 시도한다.

2. 알 수 없는 교정 내역

'어디를', '왜' 바꿨는지에 대한 설명없이 알아서 찾아보라는 식의 (2013년과 똑같은) 작업 방식. 과거에는 그 상태의 출판사 교정본을 받아서 수정 후, 내역을 일일이 정리해서 보내줬었지만, 이번에는 나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무조건 내 교정본을 기준으로 다시 작업할 것을 요구했다.

감정 싸움이 시작된 것일까? 이런 방식은 작업 내내 바뀌지 않았고, 출판사에 직접 항의하면서 언급한 부분들만 수정된 교정본이 되돌아오는 과정이 반복됐다.

3. 교정 과정을 조율하지 않는 출판사 

교정 과정이 힘들어진 가장 큰 원인. 출판사는 교정 작업을 외주에 맡겼고, 무슨 사정인지 작업자와 직접 협의하면서 작업하고 싶다는 요청을 끝까지 묵살했다. 다음은 첫 번째 책의 교정 과정에서도 비일비재했던 사례.

(원본) Snort 데이터베이스의 정규화가 너무 잘 되어 있어서
(교정) Snort 데이터베이스의 정규화가 매우 잘 되어 있어서

데이터 정규화가 너무 세분화되어서 쿼리문이 복잡해진다는 의미의 부정적인 뉘앙스를 전달하려 했던 내 의도와 다른 교정 결과. 하지만 그때 난 출판 계약 해지 등으로 1년 가까이 출간이 지연되면서 지칠대로 지쳤었고, 그만 하자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의도했던 의미를 독자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결정적으로 '2016년 10월'이란 에필로그 맺음말을 '12월'로 바꿔놓은 처사(교정 작업자조차 일정이 너무 지연된다고 생각했나?)에 분노했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메일을 보냈다.


출판사도 심각성을 느꼈는지, 내 의견을 받아들였고, 합의된 교정이 반영된 조판본을 직접 만든 후, 3자가 수정할 수 없도록 PDF 파일로 전달했다.

교정 작업자에게 감정은 없다. (진짜? -_-) 많은 오탈자를 다음어준 부분에 대해서는 감사한 마음이다.
  • 길이를 늘렸다 -> 길이를 늘였다
  • 데이터량 -> 데이터양
  • 이 기회를 빌어 반성한다 -> 이 기회를 빌려 반성한다 등등

설령 감정 싸움이 있었다 해도, 소통을 할 수 없어서 발생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의견을 교환할 기회가 있었다면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됐을텐데 아쉬울 뿐이다.

출판사는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하며, 다음에는 프로세스를 개선하겠다고 한다. 다음이라, 내게 세 번째 책을 출간하는 행운이 올까? 그런 행운이 온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사실 작년 탈고 후, 출판사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정규표현식'이라는 주제가 흔치 않은 만큼, 코드와 서술을 깔끔하게 구분하고, 가독성을 높이는 방법을 조언해줄 수 있는, 관련 책을 이미 출판해본 출판사를 통하는 게 낫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었다.

왜 생각만 하다 말았을까? 다시 시작하는 과정이 귀찮아서, 헤어짐이 싫을 때가 있다. 더 나아질지도 모르는 변화보다는, 익숙한 불편이 편할 때가 있다. 나도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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