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30일 수요일

추석이 지나고 드는 생각들

시간 참 빠르다. 작년 추석이 엊그제 같은데. 대충 생각해보니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 듯 하다. 어디서 들었는데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이 굳어지면, 새로운 경험보다 익숙한 경험이 반복되면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고. 

나이 먹을수록 명절에 대한 감회도 달라지는 것 같다. 어렸을 땐 두둑해질(?) 주머니 생각에 마냥 좋기만 하던 명절이 이젠 그닥이다. 부모님은 며칠 전부터 언제 내려오냐, 집에 와서 푹 쉬었다 가라는 말씀을 번갈아가며 하시지만, 사실 이제 부모님 집에 가면 별로 편하게 쉰다는 생각이 안 든다. 

먹고 살아보겠다고 10여 년 이상 타지생활을 하면서, 이제 부모님 집엔 내 방 없어진지도 꽤 됐고 (집 수리 하면서 거실에 흡수됨 -_-) 보던 책이며 쓰던 물건들도 다 옮겨서 30여 년을 살았던 집인데도 뭔가 어색하다. 전이나 부치는 것 말고는 별로 할 일도 없다.

물론 자식 보고 싶어 하는 부모 마음을 아주 모르겠는 것도 아니고, 조카들 재롱잔치 보는 맛도 쏠쏠하다. 다만 뭐랄까? 이젠 공감대가 사라져버린 친척들이나 동창들 겉치레도 피곤하고, 조카들이랑 놀아주기도 힘에 부쳐서 이 놈들 빨리 좀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있고, 물론 클수록 용돈도 많이 줘야(..) 

무엇보다 해가 갈수록 늙어가는 부모님 얼굴을 볼 때마다 뭔가 죄 짓는 듯한 마음이 드는 게 싫다. 암 수술 후 부쩍 기력이 약해지신 아버지나, 이제 외할머니 모습이 조금씩 비치기 시작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내가 뭐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싶을 때가 싫다.

그리고 그 와중에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나도 싫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내 시간을 나에게 쓰고 싶다는 생각? 혼자 있었으면 사다 놓고 손도 못대고 있던 책도 좀 읽고, 작심만 한 채 통 정리를 못하고 있는 것들을 손 볼 수도 있을텐데.. 하는 뭐 그딴 생각들.

1년에 최소 350일은 이미 그렇게 살고 있으면서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양, 단 며칠 자식 노릇 하는 걸 못참고 내 생각만 하다니, 스스로도 딱하다. 별로 바쁘지도 않잖아? 부모가 안 돼봐서 그런가?

그러고 보면 부모가 된다는 건 내 시간을 나에게 쓰기는 커녕, 아예 자기 자신을 포기해야만 가능한 일이지 싶다. 며칠 안되는 휴일 동안 가족들 데리고 본가와 처가를 왔다갔다 하면서 피곤해하는 매제들이나, 계속 뭔가 차리고 치우고 얘들 챙기느라 정신없는 동생들을 보면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짠한 마음이 드니.

반면에 마냥 늘어져있는 나 자신을 보면 어째 좀 한심한 듯 하다가도 한편으론 안도하는 마음이 드니 사람은 참 간사한 동물.

사실 머리가 굵어지면서부터 엄했던 아버지랑은 사이가 그렇게 좋진 않아서 동생들이 시댁에서 명절을 치루고 올 때까지는 집안이 썰렁 그 자체다.

딱 우리집

동생들이 도착해야 왁자지껄 구르고 뛰는 조카들덕에 웃음소리도 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어른들을 하나의 공감대로 묶어주고,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이래서 집엔 아이들이 있어야 하나 보다.

어렸을 때도 동생들 덕에 그나마 집에서 웃음소리도 나고 그랬는데, 이제 조카들이 집을 환히 밝혀주니 동생들이 못난 나 대신 효도하는구나.

올해는 외가에 들러서 할머니 산소도 찾아 뵙고, 근처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도 좀 (사실 꽤 많이) 주웠는데, 어머니가 너무 좋아하시면서 도통 집에 갈 생각을 안하신다. 당신 어릴적 생각이 나셨을까?

방아깨비(?) 정도는 이제 우스운 상남자 지우

연휴를 하루 남기고 동생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니 다시 아버지, 어머니, 나 이렇게 딸랑 셋만 남는다. 그렇게 떠들썩하던 집이 거짓말처럼 다시 조용해진다.

저도 그만 가볼께요.이 몇 마디 꺼내기가 쉽지 않다. 썰렁한 집안에 또 두 분만 덩그라니 남는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루 더 쉬었다 가라는 말씀에 길이 밀리네 어쩌네 변명을 늘어놓고 집을 나선다. 전화 자주 드리겠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잘하고 있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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