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4일 화요일

공포와 통제

요즘 개콘을 끊고(?) '김제동의 톡투유'를 보고 있다. 다들 비슷한 걱정하면서 살아가는구나 하는 공감을 주는 (딱히 해결책은 없는) 프로그램인데 지난 주 방송분이 좀 흥미로웠다. 

무슨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위험 앞에서 (암흑을 무서워한 덕분에 살아남은 원시 인류의 후손인) 사람들은 공포를 가진다고 한다. 특히 위험이 예상되는 사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것 같다고 '인식하는 것' 자체가 두려움을 유발한다고.

즉, 공포는 '위험한 사건이 가져오는 실제 결과'가 아니라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는, 자신이 무력하다는 생각' 자체라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통제하려고 하고, 통제되는 상황을 좋아한다. 잊을만 하면 누가 죽었다더라 하는 놀이기구를 탈 수 있고, 번지 점프나 스카이 다이빙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모든 과정이 통제되고 있다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스스로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주관적 느낌은 안정된 마음과 자신감을 갖게 해주고, 남 탓, 세상 탓 할 필요 없이 나만 잘하면 된다는 긍정적 사고와 낙관주의의 바탕이 되어 준다.

정치인이나 기업 총수 등 최종보스급 인사들의 넘치는 에너지나 거침없는 행보 역시 보통 내가 다 통제하고 있다는 믿음이 기반이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그들은 말 한마디로 통제가 가능하기도 하고)

그런데 세상에는 당연히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그것도 많이 존재한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2003년까지 교통사고 사망자가 2,300명 이상 늘었다는 연구가 있다. 비행기 사고로 죽을까봐 자동차 운전을 선택한 사람들이 늘어난 결과. (감시 강화로 불편해진 공항도 한 몫)

비행기보다 월등히 높은 사고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자동차를, 운전대를 직접 잡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인간 심리와 관련된 많은 책들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구분을 무시하는, 합리적인 사고를 방해하는 이런 현상을 '통제 착각(illusion of control)'이라 부른다.

'위험인지능력'이란 책은 이 '통제 착각'의 특징을 '가시성'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성범죄자를 통제하기 위해 전자발찌를 채우는 것처럼, 구제적인 행동이 눈에 잘 보일 때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착각?)한다는 것.

"뭔가 해야 해. 이게 바로 그거야. 그래, 우린 이걸 해야 해" (22페이지)

모르는 사람이 조정하는 비행기보다 내가 운전하는 자동차가 더 안전해보이고(아니면 남의 선택보다 내 선택으로 죽는 게 덜 억울?), 형편없는 당첨율에도 불구하고 복권 당첨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운전대를 잡거나 복권을 사는 등의 구체적인 행동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은 공포를 통제하기 위해 아무것도 안 하는 것 보다는 뭐라도 하는 것을 좋아한다. 눈에 잘 띌수록, 구체적일수록, 몸을 많이 쓸수록 좋다. 화려하고 요란하면 더 좋으며 실제 효과가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 비가 올 때까지 가만 있느니 기우제라도 지내고, 그래도 안 오면 왕을 갈아치우는 이유가 다 그래서.

이런 현상은 직장에서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바쁘게, 특히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직원들을 바라보면서 안도하는 심리가 바로 그것. 조직의 올바른 성과 판단 기준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 보다는, 일을 많이 하고 오래 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더 쉽고 간편하며, 무엇보다 눈에 뻔히 보이기 때문다. 왜 쉽고 간편하며 눈에 빨리 띄는 걸 좋아할까?

인간은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근본원인을 찾고 다양한 조건을 감안해서 복잡하고 어렵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 보다, 최대한 문제를 단순화시켜 쉽고 간편하게 해결하는 것이 에너지 소모를 줄여 (당장은)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다.

이런 진화 과정은 답을 빨리 찾는 사람은 똑똑하고, 심사숙고하느라 답이 늦어지는 사람은 멍청하다고 여기는 편견과 함께 자신감과 겸손함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었으며, 개선이 가능함에도 하던대로 하는 걸 편해하는 습성으로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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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직원들이 더 많은 일을, 더 오래 할수록 조직이 통제되고 있다는, 잘 돌아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다. 이윤 추구와 관계 없는 조직일수록 이런 현상은 심해진다. 안 망하니까(..)

적절한 '통제 착각'은 분명 정신건강에 이롭다. 그러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통제 착각'에 의한 현실 왜곡의 정도는 점점 더 심해지며, 결국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만든다.


이런 '통제 착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톡투유 패널로 참가한 최진기 씨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게 될 때 공포는 사라진다고 했다. 현실을 정확히 알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공포'도,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 수 있는 '위험'으로 바꿀 수 있다는 얘기.


내가 종사하고 있는 정보보안 분야는 어떨까? 매일같이 취약점을 점검하고, 공격자를 차단하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안전하냐는 물음에 시달려야 하고, 언론 기사 한 줄에 일희일비하며, 언제 사고가 발생할지 몰라 전전긍긍이다. 말 그대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공포의 현장.

그만큼 현실, 현황 파악이 잘 안 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최신 기술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그 기술들은 과연 우리에게 현실을 얼마나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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