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4일 토요일

성공불융자금

이명박 정권 당시 몇십 조의 국가 예산이 자원외교라는 이름으로 석유, 가스, 광물자원공사와 다수의 민간기업에 투자되었다고 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떠나서 '성공불융자금'이란 단어에 눈길이 갔다. 1984년에 도입된, 민간 기업이 해외 자원개발 등 고위험, 고수익 사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정부가 기업에 자금을 빌려주되 실패하면 융자금을 감면해주고 성공하면 원리금에 부담금을 얹어 반환하도록 한 제도라고 한다.

한 번의 실패도 용납이 어려운 한국 사회에서 이미 30여 년 전부터 실패하면 갚지 않아도 되는 융자 제도가 있어왔다는 게 참 신기하다. 장기적인 국익을 위해 필요한 제도임이 분명하다. 뚝딱뚝딱 5년안에 승부를 보려고만 할 게 아니라 국익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면 100년을 내다보는 정책도 필요하지 않은가?

물론 국민의 세금을 날리는 실패의 책임을 덜어준 만큼 신중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가능성을 따지고 또 따진 후, 100년 팔 각오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우물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 때 추진한 해외자원 개발사업이 69개라고 한다.


누구 말마따나 아직 모르는 일이긴 하다. 10년 후에 220조를 벌어올 수도 있다. 그래도 그렇지 69개라니! 국민소득 3만불 시대지만 아직 학교에서 학생들 밥줄 돈도 없는 대한민국이다. 과연 69개의 사업이 신중에 신중을 기한 결과인가?

분명 저 '성공불융자금'은 수많은 자격요건을 따지고, (예쁜 그림과 온갖 미사여구가 나열된) 수백장의 사업계획서를 검토한 끝에 허가되었을 것이다. 물량공세속에 뭐라도 얻어걸리길 바라는 식으로 진행되었을 리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왜 이모양인가? 문제는 도덕성이다. 정치는 정의로운 분배, 한마디로 세금을 정의롭게 쓰는 것. 국민의 세금을 도덕적 바탕 없이 정의롭게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덕성이 기본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취지의 제도라도 악용당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도덕성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내가 안써도 어차피 누군가 쓸 돈, 먼저 쓰는 사람이 임자인 눈 먼 돈으로 세금을 바라보는 세상이다. 나만 그런가?-_-

아무리 까다로운 자격을 요구해도, 아무리 완벽한 사업계획서를 요구해도, 이런 사회 통념을 바꾸지 못한다면 세금 축내는 상황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교육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학교에서 착한 사람, 나쁜 사람 타령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어린 학생들이 먼저 알고 있다. 학교와 사회가 다르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도덕성이 낮을수록 생존에 불리해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가능할까? 자원, 토건 세금 쓰는 거에 비하면 정말 껌값일 뿐이지만 미디어에서 해외 선진 기술로 요란하게 소개되고, 국가 성장동력으로 채택된 후, 세금 타내려는 업체들이 난립하는 수순은 IT 분야에서도 꽤 흔하다.

예쁜 그림과 화려한 수사만으로 세금을 타먹는 행운아들을 보면서 배가 아픈게 사실이다. 내게 그런 행운이 온다면 도덕 따지며 양심 지킬 자신이 없다.

낮은 도덕성이 오히려 생존에 유리한 세상 같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할 거 같은데.. 엄두가 안난다. 결국 오늘도 용두사미다.

사족
'성공적으로 실패하라'는 말이 많이 떠돌고 있다.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고, 실수도 하고 실패도 경험하면서 그 안에서 같은 실수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는 지혜를 얻는다면 성공의 가능성은 당연히 높아질 거라는 것 쯤은 기본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한 번 실패하면 회복도 재기도 어려운,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사회에서는 듣기 좋은 말일 뿐이다. 구더기가 무서우면 장을 안 담그는 게 맞다.

실패를 포장하고, 성과를 부풀리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성공불융자금'은 성공적인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조성에 꼭 필요한 제도이다. 자격요건 늘리고 감사 강화하는 식의 땜질말고 높은 도덕성이 생존에 유리한 세상이 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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